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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간을 억압하는 어떠한 관념적 폭력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by ™№℡㏘ 2021.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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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근본적 사상

인간을 억압하는 어떠한 관념적 폭력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동학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적 근원이다. 19세기 중반 한국에서 일어난 동학운동은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이었다. 동학운동을 블란서 혁명과 비교할 수 있으나, 블란서 혁명에는 그 어떠한 사상의 뒷바침이 없는 혁명으로 동학운동과 비교해 이것은 민중의 폭력에 불과한 것이었다.

 

19세기 철학자 러셀이 예견한 미래는 문명의 주체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동양은 서양을 알기 위해 그들의 역사, 종교, 철학, 예술, 과학 등 모든 전반에 걸쳐 연구하고 체득을 해나가는 반면 서양은 동양의 것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동양이 서양의 모든 것을 흡수해 버린다면 동양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서양은 더이상 동양을 지금 처럼 압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 과학 분야의 우월함으로 서양이 아직 세계를 이끌고 있지만, 이것 마져 동양이 앞선다면 세계의 패러다임은 동양이 문명을 주도하는 시대로 문명주도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될 것이다.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

1824년 태생인 수운은 1864년 40세도 안된 나이에 참수되어 생을 마감한다.

기록에 나타나는 그의 언행에서 유추하자면 수운은 의젖하고 진지하며, 거짓없고 코믹한 아주 발랄한 30대의 청춘이였다.

청춘이란 비극에 물들지 않은 영혼이다. 비극이란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으로, 고등한 의식이 발달한 인간에게 특화된 감정이다. 비극은 상실과 좌절을 의미하는데, 청춘은 진정한 의미에서 비극을 체험하지 않은 순수한 존재로, 그로 인해 또한 비극의 한가운데로 빠져 들어 비극과 맞설 수 있는 활력의 시기이다. 

이러한 젊은 수운은 동학이라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사상을 이뤄내었다. 

 

동학의 바탕되는 주자학

주자학은 우리나라 조선왕조를 이끌던 사상이다. 주자학을 전근대적이고 봉건적 사상이며 계급층의 지배이데올로기 정도로 폄하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이가 있을 수 있으나, 주자학이야 말로 완전한 Contemporary한, 진보된 현대철학인 것이다. 

 

주자학: 인격신의 폭력이 없는 하나의 도덕의 체계

인격신, 人格神
인간적인 용모·의지·감정을 가지며 인간과 교제를 맺는다고 믿어지고 있는 신. 
미개 종교에서의 마나적(mana 的)인 힘의 관념이나 
근세의 합리주의적 종교에서의 신성(神性)의 관념에 대비하여, 
특히 인격성이 명확한 숭배 대상을 말함. 크리스트교·이슬람교의 신 따위.

 

주자학은 "리理"와 "기氣" 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理氣(리기)의 예(exaple)에 대한 사상이다.

주자학에서는 理조차도 氣의 조리(條理, 이치)라고 보기 때문에 理와 氣는 완전히 이분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理와 氣라는 부분이 분리가 되어, 理라는 것이 신적인 존재, 하나님으로 가버리게 되어, 초월적인, supernatural 하게 숭배 되다보니, 理 아래에서 氣가 폭력저 지배를 받게 되는 하등적인 철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양사상에서는 이미 주자학에서부터 理氣의 본원적인 문제는 항상 氣를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주자 역시 氣를 종속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이러한 사상체계가 바로 현대 서양이론이 말하는 그들의 현대철학이 되는 것이다. 

 

수운의 동학 개벽사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주자학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진보적인 Radical 한 성격때문 인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이미 초월적인 理를 인정하지 않았고, 물론 퇴계 이황의 주리론(主理論)에서는 약간의 초월적인 성격이 좀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氣속에 포섭되는 개념으로서의 理이다. 

이렇게 주자학이 일체의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어떤 의미에 이것은 완전한 Contemporary한,  현대철학인 것이다.

 

 

우리의 조선왕조가 후진 역사였고 그래서 우리가 근대화라는 과정을 격어야만 했다고 말하는 자체가 넌센스다. 

근대화를 겪어야만 한다고 말할 만큼 우리 조선의 사상이 전근대적 봉건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며, 그보다 우리 조선이라고 하는 것이 세계사적으로 어떻게 해서 수운의 사상이 나올 수 있었는냐 하는 것을 이제는 진지하게 토론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주자학 자체라는 것이 이념적 구조로 볼때, 서구적으로 말한다면 근대철학이고 현대철학이다. 수운의 동학 개벽사상은 이러한 주자학의 체계를 계승하면서도 주자학이 가지고 있는 도덕주의적인 Rigorism (엄격주의)과 같은, 주자학이 강요하였던 모든 폭력적인 것을 배제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근본적인 수운의 사상이다.

또한 수운은 이러한 주자학이 강요하였던 엄격주의와 같은 폭력적인 성격을 서학과 결부시켜, 그것이 서학의 폭력적이고 지배적이며 수직적인 구조와 동일하다고 본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조선왕조를 부정적으로 본다해도, 조선왕조가 가지고 있던 본질인 도덕주의적 질서라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지금 20세기에서 강점을 보이는 것은, 사실 대한민국 코리아가 가지고 있는 도덕주의다. 미국은 1849년 골드 러쉬의 시작이 세계를 지배하는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 금을 찾기 위해 타 대륙에서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오며 신대륙에서의 부의 길이 열린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부를 이끌어 낸 골드는 마약이나 무기로 바뀐지 오래고 이로인해 발생하는 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를 방문하면 한국인들의 의젖하고 점잖은 한국인에 대한 매력과 한국 사회의 안전한 치안이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도덕주의적 질서, 서로를 배려하려는 마음, 더 깊게는 생명에 대한 존중심,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우리가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자학이라는 것과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철저하게 그 도덕주의적 사고가 자리잡혀 있게 된것이다. 공자의 유교사상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유지되어 오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노나라 사람 공자의 유교사상이 지금의 중국에서 발원하였으나, 그것을 더욱 탐구하고 발전시켜 유지해온 나라가 조선이기 때문이다. 

 

주자학의 바탕이 바로 공자의 仁(인) 이다. 仁을 다른 말로 하면 생명에 대한 존중 (Reverance of Life)이며, 不仁이라 하면 생명대한 존중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의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동학사상은 이러한 깊은 배경 속에서 인간이 그야말로 인간답게 살아보자라는 현실적 이상을 가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보자의 대전제는 "인간은 억압하는 어떠한 관념적인 폭력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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