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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정치

흙수저 정치인, 이재명 범죄전과 욕설 학력 대선 이슈

by ™№℡㏘ 2021.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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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이슈들, 시대의 흙수저 정치인

흙수저 정치인,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린다. 안동 예안 산골에서 밭떼기 조금 붙이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다. 흙수저도 보기 드문 흙수저다. 이재명이 1963년생으로 지금 나이가 58세로 대선주자 나이로는 많은 축에 들지 않는다. 그 당시 시골 산골이라도 대부분 중학교 정도는 정규 졸업을 하는 시절이며, 웬만하면 고등학교까지는 졸업을 하는 시대였다. 이재명은 정규 중학교도 다니지 못할 정도였으니 유년시절 가정형편이 어느 정도였는가 상상이 쉽게 갈 것이다. 

 

이재명 고향

경북 안동시 예안면 산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마치고 가족들과 성남으로 이사. 예전 시골 겨울 농한기는 시간이 넉넉해 고스톱도 치고 저녁 마실도 돌며 술도 한잔 씩 하고 보내는 게 보통 시골 일상인데, 당시 도리짓고땡의 유행으로 이재명 아버지가 그나마 조금 붙여 먹던 농지까지 날려버려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성남으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성남은 공장 밀집 지역으로 도시 빈민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다.

 

 

이재명 학력

  • 안동 삼계초등학교졸업 (1976년)
  • 고입검정고시합격(중졸자격획득, 1978년_만15세)
  • 대입검정고시합격(고졸자격획득, 1980년_만17세)
  • 서울 중앙대학교 학사(1982년-1986년), 82학번
  • 제28회 사법시험합격(1986)

소년공으로 어려운 유년시기를 보내며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공장관리자들의 위세를 보며, 나도 관리자가 되어 월급을 좀 더 받아야겠다는 목적이였다. 소년공 시절 공장 프레스에 팔이 찍혀 장애를 입게 되었고, 락커 공장에 일하면서 후각기능을 절반 정도 잃어 상실하게 되었다. 다니고 싶은 학교도 못 가는 자기 신세 한탄 방황도 심했던 시기였으나 낮에는 공장일 하고 밤에는 독학해 가며 힘들게 소년 시절을 버텨냈다. 

 

1981년부터 전두환 군부시절에 사교육 과열을 막기 위해, 대입 본고사제도를 폐지하고 대입학력고사제도를 시행하게 된다. 학력고사는 모든 대입 응시자가 같은 날 같은 시험을 실시하고, 해당 등수로만 학생 선발하는 방식이다. 특정 상위 등수에 들면 대학등록금 면제와 매월 학비보조금을 지원해 주는 정책도 함께 시행되었다. 이 제도를 발판삼아 대학교 진학을 결심한 이재명은 낮에 공장일을 하면서 그해 3월 야간학력고사학원을 등록한다. 그해 7월, 퇴근 후 버스타고 학원 갔다가 와야하는 시간이 아까워 학원을 그만두고 독학하기로 하며 공장도 그만두고 시험준비에 몰두한다. 그해 학력고사에서 최종적으로 등록금면제와 월 2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으로 1982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다. 대학시절 선배들의 행정고시 사법고시 합격 및 성공 이야기를 듣고 사법시험공부를 시작해서 대학교 졸업하는 해인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이재명

사법연수원 시절 검사 판사 변호사의 갈래길을 두고 선택의 고민을 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사회의 최빈민층 밑바닥 인생을 직접 경험하며 힘들게 살아온 이재명에게 검사와 판사 같은 장밋빛 인생의 길들이 놓여 있는데, 그 길을 선택하지 않고 변호사의 길을 택했을까? 1987년 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가게 된다. 연수원시절 전노무현대통령의 법 강의를 들으며 변호사는 굶지 않으니 겁먹지 말고 인권을 위한 변호를 바로 시작해도 좋다는 그의 말이 선택의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길이다. 힘들게 일하고 어렵게 공부하며 최빈민층의 삶을 직접 체험하며 살아온 자에게 눈 앞에 편안한 길이 놓여져 있는데, 그 길을 뒤로하고 변호사를 시작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두렵고 어려운 선택인 것이었다.

어쨌든 간에, 노동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노동운동 지원 변호 상담 노동교육 등 지역의 여러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선배 변호사를 돕고 자원봉사를 하며 89년 3월 성남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다. 

 

 

노동운동의 절정기

1980년대 후반에서 1993년 정도까지의 기간이 대한민국에서 노동운동의 절정기였다. 이 시기에 데모 시위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였다. 특히 성남은 공장이 밀집되어 있고 공장 노동자들이 빈민층을 형성해서 많이 모여 살던 곳이라 전국의 노동운동가들이 거쳐갈 만큼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 이재명은 노동운동 관련한 상담 및 지원활동을 활발하게 하게 된다. 

1994년 경부터는 박원순의 서울참여연대와 이재명의 성남시민모임이 연대하여 시민운동을 함께하기도 한다. 

 

언론에 이재명이 나오게 되는 사건들

  • 경찰의 여성노동조합원 알몸 수사사건 변호맡음 (전국뉴스로 MBC인터뷰)
  • 분당파크뷰 특혜분양사건
  • 성남시의회의 성남시립병원 폐쇄

 

2002년도 분당파크뷰 특혜분양사건 개요

이재명이 성남지역의 토건 비리, 토건 마피아, 건설깡패들과 한판 붙은 사건으로 이재명에게 범죄 전과 기록만 남겨준 사건이 됨. 강력하게 조직화된 토건비리 세력에게 이재명 완패함.

  •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토지용도변경과정에 편의를 봐준 정치인, 성남시청간부, 경찰, 언론인에 아파트 특혜분양을 해준 사건
  •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이재명은 1999년부터 백궁정자지구용도변경을 대규모 부정특혜사업으로 판단하고 반대운동을 벌인다.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에게 용도변경포기를 요구하였으나, 2000년 5월 성남시는 이 지역을 용도변경해 줌. 이과정에서 성남시는 주민여론조사를 조작해서 발표하고, 건설업자에게 사업시행을 가능하게 해줌.
  • 2002년 전 국정원 간부의 탄원서로 특혜분양 문제가 제기되며 크게 부각됨.
  • 이 시점에서 한 언론사에 이 사건 취재를 시작, C피디가 이재명을 찾아와 사건관련 설명을 문의한다.
  • 2002년 5월 10일, C피디와 이재명은 성남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피디가 성남시장에게 뭘 물어보면 좋겠냐고 문의한 것에 대해,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설명해줌.
  • 이날 C피디가 김병량 성남시장에게 검사사칭 전화를 함. 
  • 검찰은 이재명이 검사 이름을 알려주고, 검사사칭을 부추겼다고 주장하며 기소
  • 이재명은 그런 적 없다고 변호 하였으나, 검사사칭혐의로 벌금 150만 원이 확정됨 (전과기록)

 

 

성남시의회의 성남시립병원 폐쇄 사건

당시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성남시의회는 성남의 개발과 함께 민간병원들의 영업을 돕기 위해, 공공병원인 성남시립병원 2곳을 폐쇄한다. 이에 대해 서민들의 의료공백을 우려하여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의 공동대표를 맞아 사업추진을 한다. 

  • 대한민국 역사에서 첫 주민(시민)발의로, 공공병원설립을 시민이 의회에 발의한 사건.
  • 6개월 동안 시민들 동의를 받아 10만 명의 동의를 받음. (주민등록 확인 및 지장받은 것이 1만 8천 명 정도)
  • 2004년 이렇게 어렵게 시민발의가된 안을, 47초 만에 당시 보수정권 시의회가 부결도 아닌 폐기를 해버린 사건
  • 이 과정에서 설립추진위원회와 시의원 간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
  • 성남시의회는 설립추진위원회와 그 대표였던 이재명을 고발
  • 이재명 수배까지 떨어진 사건, 
  • 2004년 8월 특수공무 집행방해및 공용물건 손산으로 벌금500만원 확정 (전과기록추가)
  • 해당영상에서 안건 폐기후, 욕하는 영상이 욕설 영상으로 많이 사용됨.

 

성남시립병원 폐쇄 사건으로 정치 결심

이 사건으로 좌절을 느낀 이재명은 성남시장이 되어 직접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계기로 이재명의 정치인생의 길을 시작하게 된다. 

  • 2006년 성남시장 출마 = 낙선
  • 2008년 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주당 분당구 전략공천받아 출마 = 낙선
  • 2010년 제19대 경기도 성남시장 당선 (만47세)
  • 2014년 제20대 경기도 성남시장 당선 (만51세)
  • 2017년 민주당 대선경선후보 (만54세), 탈락
  • 2018년 제35대 경기도지사 당선 (만55세)
  • 2021년 현재, 경기도지사
  • 2021년 현재,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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